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따르면 의료사고 분쟁 건수는 2012년 385건에서 해마다 증가하여 2019년 2,647건으로 지난 8년 동안 약 7배 증가하였다(Fig. 1). 국내 의료분쟁이 증가하는 원인으로 진료 기회 확대에 따른 의료행위 절대량의 증가, 높은 의료서비스 접근성으로 인한 의사-환자 관계의 수평화, 의사-환자 간 신뢰 상실, 의료행위 본질에 대한 몰이해 때문에 악결과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는 환자 성향, 의료인의 의료법리에 대한 이해 부족, 의사와 환자 간 소통 상의 문제, 의료인의 과중한 업무 부담 등이 제시된다[1]. 이러한 의료분쟁 확대는 의사의 소신진료를 위축시키고, 방어적 진료 및 과잉진료 행위를 양산하며, 의료비는 물론이고 기타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고, 의료사고 발생 위험이 높은 전문 과목 선택 기피로 인해 전문의 인력 수급 불균형을 초래하 는 등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2018년 수원지방법원 성남 지원은 8세 환자가 횡경막 탈장으로 사망한 사건에서 진단 실패로 치료 시기를 놓쳤다고 판단하여 업무상 과실치사 협의를 인정하고 진료 의사 3명에 대해 금고 1년 이상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 판결을 내린 적이 있었다. 2018년 11월 대한의사협회에서 79,022명의 의사회원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시행한 결과 ‘그 판결을 계기로 적극적인 료행위가 위축되었냐?’는 질문에 대해 74.3%가 ‘매우 그렇 다’는 의견을 보였으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환자가 이상 소견을 보이면 상급병원으로 전원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냐?’는 질문에 87.9%가 ‘매우 그렇다’고 밝혔고, ‘이번 판결을 계기로 이상소견을 보인 환자에게 불필요하더라도 추가 검사를 해야겠다는 부담이 커졌냐?’는 질문에 85.7%가 ‘매우 그렇다’라는 의견을 보였다[2]. 전문의 인력 수급 불균형 문제는 일찌감치 수가 문제와 연관되어 외과, 산부인과, 흉부외과 등의 특정 필수 전문과목 기피 현상이 심해지면서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전공의 정원을 의과대학 졸업생 수와 같도록 감축하는 ‘전공의 정원 합리화 정책’이 시행되었다. 이런 필수 의료 인력 수급 불균형 문제와 최근 급격한 의료분쟁의 증가가 맞물려 필수의료 공백 현상은 더 가속도가 붙은 상태이다.
의료분쟁이 발생했을 때 환자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가령 당사자 사이 합의(화해 계약), 금전적인 손해배상(진료비 감면, 위자료 등)을 주장하거나 자력 구제(시위, 폭행, 협박, 인터넷 게재 등)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고 민원 제기(상급자, 보건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건강보험공단, 보건복지부, 수사기관, 청와대 등), 조정 신청(한국소비자원,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소송 제기(법원), 형사 고소(경찰, 검찰)로 의료 분쟁을 해결하려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의료소송의 변화를 보면 과거에는 민사 손해배상 청구만 하거나 형사 고소를 하고 증거 확보 후 민사 손해배상 청구 순서를 거쳤던 반면, 최근에는 먼저 민사 손해배상 청구를 하고 과실 추정된 손해배상의 판결문을 근거로 형사 고소의 순서를 거치는 경우가 많아졌다[3]. 형사 재판에서는 공소 제기된 의료분쟁에 대한 입증 책임은 검사에게 있는 것이고 유죄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공소 사실을 확실하게 뒷받침할 수 있는 강력한 증거가 필요하다. 그러나 민사는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우 형사 소송에 비해 의료인의 과실을 쉽게 입증할 수 있어서 손해배상이 인정되는데 이 경우 형사 소송을 담당하는 판사의 심증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3]. 더욱이 최근 법원은 민사 소송에서 입증 책임을 더욱 완화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의사들에 대한 처벌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민사 소송은 전통적이고 대표적인 의료사고 배상 책임 관련 분쟁 해결 수단이었다. 의료 관련 민사 소송은 1989년부터 2009년까지 20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하다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설립되고 조정 및 합의가 활성화되면서 2010년 이후에는 매년 1,000건 안팎의 소송으로 더 이상 증가하지 않고 있다(Fig. 2). 1심 본안사건 중 약 58%에 대해서는 판결이 선고되며, 약 40%는 소송 취하, 조정, 화해, 기타 등 합의와 유사한 형태로 종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1]. 2014년 이후 판결이 선고된 사건의 판결 현황을 분석해 보면 원고 전부 승소 사건은 2% 내외, 원고 일부 승소 사건은 50% 내외, 원고 전부 패소 사건은 47% 내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인용률이란 전체 사건 중 원고가 전부 또는 일부 승소하거나 화해, 조정, 인낙 등에 의해 원고 청구의 전부 또는 일부가 받아들여진 사건의 비율이다[1]. 국내 의료소송 인용률은 약 50% 내외로, 손해배상 소송 전체 인용률과 유사하다[4]. 이는 ‘의료사고는 환자 측에서 입증을 책임져야 하므로 환자가 불리하다’라는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방증한다[1]. 약 50%를 상회하는 국내의 의료소송 인용률은 미국의 인용률과 비교했을 때 큰 대조를 이룬다. 미국에서 발생한 의료사고 중 2-14%만이 배상 청구로 이어지고, 청구된 사건 중 의미 없는 사건이 75%에 달한다[5].
최근에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의사의 의료과실로 인한 업무상 과실치사상죄 현황을 담은 '의료행위 형벌화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를 공개하였다. 형사 재판의 대상이 된 전문 진료과목 가운데 상위 10개는 정형외과, 성형외과, 산부인과, 외과, 내과, 피부과, 신경외과, 정신의학과, 비뇨기과, 이비인후과였다[6]. 국내 의료인의 업무상 과실치사 상으로 인한 경찰과 검사 기소 현황은 외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높다(Table 1) [6]. 동일한 대륙법계이면서 유사한 사법 체계를 가지고 있는 일본도 업무상 과실치사 상으로 기소되는 의사 수가 현저히 적다. 독일의 경우는 의료인의 형사 재판 및 형사 책임은 검찰의 기소 단계에서 조건부 기소 유예 등을 통하여 의료행위의 형벌화를 자제하고 있으며 의료인이 의료과실 자체만으로 징역형 등과 같은 형사 처벌을 받는 경우는 없다[6]. 또한 국내의 유죄율은 다른 국가보다 높다. 이처럼 높은 기소율과 유죄율은 방어진료의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공권력이 의사의 의료행위를 침해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의료감정이란 의사의 의료행위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적절한 진료가 제대로 행해졌는지 여부를 평가하는 것이다. 의료소송에서 감정 결과의 이용은 전문가의 지식 경험을 이용하는 데 불과하는 것으로 법관이 채택 여부를 선택할 수 있고 감정 결과에 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 원론적인 입장이지만 실제로는 감정 결과가 의료소송의 향방을 결정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료감정 보고서는 증거가 되고 영구적으로 보존되며 전례를 남겨 인용될 수 있기 때문에 현명한 의료감정이 매우 중요하다[7]. 현재 의료감정은 각 전문학회 감정 위원, 중재원 내 감정위원 및 대학병원의 해당 과목 전문의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의료감정인의 필수 요건에는 의사 면허, 고도의 전문 지식, 충분한 임상경험, 높은 의료 윤리, 냉정하고 중립성을 유지하는 태도와 국내 관련 법규 이해 등이 있다. 또한 의료과실에 있어서 인과관계, 입증 책임 등에 있어서 민사와 형사는 차이가 크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7]. 형사의 경우에는 인과관계, 입증 책임 등을 엄격히 요구하는 반면 민사의 경우에는 손해의 공평, 분담이라는 측면에서 의료과실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올바른 의료감정서 작성을 위해서는 의료인의 과실의 정의를 알아야 한다. 의료인의 과실은 의료인이 마땅히 지켰어야 할 주의 의무를 위반한 것을 의미하는데, 주의 의무에는 결과예견 의무와 결과회피 의무가 있다. 결과예견 의무 위반이란 의료행위로 인해 나쁜 결과가 예상되었으나 이를 미리 막지 못한 경우이고 결과회피 의무 위반이란 현재의 의료 수준에서 가장 적절한 치료법을 택하지 않아 부작용이 발생한 경우이다[8]. 의료인의 주의 의무 위반 판단 기준은 다음과 같다(Table 2). 의료인은 환자에게 행하는 의료행위의 전 과정에서 설명 의무를 가지고 있다. 주의 의무와 설명 의무를 위반하였을 때 의료과실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의료감정서 작성의 원칙은 목적이 뚜렷해야 하고, 감정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하고, 내용이 충실해야 하며,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감정서의 내용이 잘 전달되도록 해야 한다. 감정의사는 감정서 작성 전에 완벽한 준비가 필요하며 이는 법적 문제와 관련된 사항, 진료기록, 검사실 검사, 영상 검사 등 의료 관련 자료 및 진료기록, 진찰 소견, 치료 내용, 치료 결과 등 핵심 사항에 대한 기록을 완벽히 검토 후 감정서를 작성해야 한다.
의사가 구속되는 이유는 부적절한 감정, 민사감정을 형사 감정에 잘못 적용하는 제도적인 문제와 고의가 아닌 과실에 대해 형사 책임을 묻는 악용된 형사 소송이다[7]. 판사는 의학 전문가가 아니므로 소송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의사의 의료감정 결과에 따라 판결을 내리는 경향이 많다. 따라서 감정의사는 신중하고 현명한 태도로 의료감정에 임해야 한다(Table 3). 특히 의료감정이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해당과 전문의들에 의해 수행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감정의사는 자신의 의학 수준에 감안하여 감정하는 것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9]. 즉 이상적인 의료행위와 진료 지침에 따랐는지 여부를 판단하려는 감정 오류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감정질의서 내 반복되는 질문은 감정인의 실수를 유도하여 환자 측의 주장을 입증하려는 질문이기 때문에 주의를 요한다[7]. 의료감정에서 불필요한 단어, 특히 감정(感情)이 섞인 단어는 감정인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피해야 한다[9]. 감정인이 의료사고와 관련된 의무기록을 확인하고 후향적으로 생각해 보면 원인과 과실처럼 보일 수 있어 ‘아쉽다’, ‘돌이켜 보면’ 등의 단어를 사용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의료 현장과 환자 상황은 시시각각 변화하기 때문에 감정인은 본인이 그런 상황에 몰입되어 감정을 해야 한다[9].
최근 증가하는 의료분쟁과 변화된 의료분쟁으로 인하여 의사들은 안전한 진료 환경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우 일률적으로 의료인의 과실 유무를 따져 형사 처벌하는 경향이 높고 의료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 및 응급 상황 또는 필수의료 영역과 같이 의료사고의 위험이 높은 영역에서 의사의 책임을 폭넓게 인정하려는 현 세태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의료인을 대상으로 하는 형사 처벌 등의 징벌적 조치는 오히려 대다수의 환자에게 유해한 법제도이다. 앞으로 이런 상황이 진행되는 경우 의사의 소신진료를 위축시키고 방어적 진료 및 과잉진료 행위를 양산하며 의료 비용을 상승시키고 의료사고 위험이 높은 전문과목 선택 기피 현상을 유발하여 전문의 인력 수급 불균형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의료계에서는 1) 정상적인 의료행위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악의적인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아닌 이상 원칙적으로 형사상 과실치사상죄의 적용 배제, 2) 교통사고처리특례법과 같은 의료사고처리특례법, 3) 필수의료 분야에서 발생하는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국가가 책임지고 보상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나 정치인들은 다른 전문가 직역과의 형평성과 국민 법감정을 고려해서 계속 검토만 하겠다는 공허한 메아리만 외치고 있다. 따라서 의료감정이 법리적 판단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을 고려하여 이런 상황을 타개할 의료계의 시급한 과제는 의료감정서를 작성하는 의사는 감정서의 중요함과 영향력을 인지하도록 하고, 의료사고에 대해서 공정하고 객관적이고 일관성 있는 의료감정을 할 수 있는 전문가를 확충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