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의 의료 체계의 한계와 개혁
Unique Features and Reforms of the Korean Healthcare System
Article information
Trans Abstract
Korea's healthcare system has forcibly incorporated private doctors and private medical institutions into the National Health Insurance, which is known as the Compulsory Designation System for Healthcare Institutions. This system is connected to multiple regulatory layers. In addition to these structural contradictions, increasing civil and criminal liabilities imposed on medical professionals have accelerated the exodus from essential medical services. The 2024 essential healthcare policy package proposed by the Ministry of Health and Welfare and the rapid expansion of medical school admissions completely ignored the structural problems of Korea's healthcare system. Primarily, the Korean healthcare system must restore systemic coherence. If regulations not imposed on the general public are applied to physicians in the name of public healthcare, a system must be created within which the advancement of medical services and the quality of life for physicians can be ensured. This is the only way to advance public healthcare in Korea.
서 론
2024년 2월 1월 보건복지부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2월 6일 보건복지부는 2025년부터 의과대학 정원을 3,058명에서 5,058명으로 무려 67% 확대하겠다고 발표하였다[1]. 2024년 우리나라 의료 현장의 혼란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보건복지부는 급격한 의과대학 증원의 명분으로 필수의료 살리기를 내세웠다. 보건복지부는 중증응급의료의 공급 부족이 시장 실패이며 미용의료, 실손보험 때문에 불공정 의료 생태계가 초래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시장 실패는 자유방임 상태의 시장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건강보험 수가는 정부가 결정하며 극도의 초저수가를 유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간 이식 비용은 미국의 16분의 1 수준이다[2]. 더 나아가 미용의료, 실손보험이 이러한 초저수가를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인과관계를 거꾸로 해석하고 정책 실패를 숨긴 채 의사의 이기심 탓을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주장과 달리 증증응급의료의 공급 부족은 명백한 정부의 실패이다.
보건복지부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급격한 의과대학 증원은 소위 필수의료도 살리지 못하면서 미래 세대의 의사를 극심한 경쟁 속으로 몰아넣게 된다. 우리나라 의료 체계의 구조적 모순을 이해할 때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저항을 더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본 론
서구 민주주의 국가의 의료 체계와 의료보장제도
한 나라의 의료 체계는 공공 의료(의료보장제도)와 민간 의료로 구성된다. 민주주의의 현 실태는 국가마다 다르지만 그래도 민주주의 국가라면 어떤 공통적인 구조가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서구 민주주의 국가의 의료 체계에도 어떤 공통적인 구조가 존재한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 중 의료에 대한 국가 개입이 강하다는 영국 의료 체계의 구성 원리는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국민은 무료로 National Health Service (NHS) 진료를 받을 수 있다. NHS는 영국의 의료보장제도이다. 둘째, 모든 국민은 NHS 진료를 받기 위해 줄을 서야 한다. 이것이 대기 시간(waiting time), 대기 목록(waiting list)의 문제다. 셋째, 일반의(general practitioner, GP)가 NHS 병원 진료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면 환자는 NHS 병원 진료를 받을 수 없다. 이를 문지기(gatekeeper) 기능이라고 한다. 넷째, NHS 병원 진료를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은 본인 부담으로 민간 의료(private care)를 이용한다. 다섯째, 영국의 의사(GP 혹은 consultants)는 NHS에 강제로 동원되지 않는다. 본인이 원하면 독립적인 민간 의료 영역에서 일한다.
이처럼 영국의 의료 체계에는 의료보장제도인 NHS와 민간 의료가 병존한다. 영국 뿐 아니라 서구 민주주의 국가의 의료체계가 거의 비슷하다. 2022년 현재 OECD 38개 회원국 중 36개 국가에서 의사 겸업(physician dual practices, PDP)이 가능하다[3]. PDP는 의사가 공공 의료기관과 민간 의료기관에서 동시에 일하는 것을 말한다. 의사 겸업은 공공 의료와 독립적인 민간 의료가 존재하여야 가능하다.
이렇게 서구 민주주의 국가의 의료 체계는 공공 의료와 민간 의료가 병존하고 있다. 그 이유는 아무리 부유한 국가일지라도 공적 재정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의 선택권도 존중하여야 한다. 본질적으로 의료보장제도는 국민을 도와주는 제도이지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박탈하는 제도가 아니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의 의료 체계는 이 한계를 지키고 있다.
한국 의료 체계의 독특한 특성
우리나라는 국민건강보험법에서 모든 민간 의사와 민간 의료기관을 의료보장제도인 국민건강보험에 강제 동원해 놓았다. 이를 요양기관강제지정제라 한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공공 의료와 독립된 민간 의료가 존재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의사 겸업이 금지되어 있는 극히 드문 나라에 속한다.
2002년 헌법재판소는 요양기관강제지정제에 대한 헌법 소원에서 다른 나라에서 공공 의료보장제도의 운영을 위해 강제적 제도를 사용하고 있는지를 검토하였다. 헌법재판소는 사회 보험 방식을 취하는 선진 외국의 운영 실태를 살펴보더라도 요양기관을 강제로 지정하는 제도를 취하고 있는 국가는 없으며 모든 국가가 보험자 또는 국가와의 계약을 통하여 보험의(保險醫)를 확보하고 있다고 인정하였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요양기관강제지정제에 대해 합헌 결정을 하였다. 가장 중요한 논거는 우리나라에서 공공 의료기관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0년 현재 병상 수를 기준으로 15.5%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공공 의료기관이 적은 것은 의사의 책임이 아니라 정부의 책임이다. 헌법재판소의 논리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더 나아가 헌법재판소의 요양기관강제지정제 합헌 결정은 공공 의료의 발전을 저해하였다.
우리나라 정부 예산은 2000년 92.7조 원에서 2021년 558.0조 원으로 5배 이상 증가하였다. 그러나 공공 병상 비중은 같은 기간 오히려 15.5%에서 9.6%로 감소하였다. 우리나라에 공공 병상이 적은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공공 의료는 국민 모두의 부담으로 지켜내겠다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 출발에 요양기관강제지정제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이 있다.
더 나아가 요양기관강제지정제는 중층적 규제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먼저 요양기관강제지정제는 강제 수가로 이어졌다. 사회보험에는 재정의 한계가 있으므로 충분한 건강보험 수가를 제공하기 어려울 수 있다. 문제는 요양기관강제지정제에 의해 모든 의료기관이 강제로 건강보험에 동원되어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초저수가가 모든 의료기관에 강제된다는 점이다. 또한 요양기관강제지정제는 강제 심사, 삭감, 환수로 이어졌다. 보건복지부가 일방적으로 심사 기준을 만들고 적용하는 과정은 매우 관료적이고 폭력적이어서 심평의학이라 비난받고 있다.
의료 행위에 대한 임의 비급여 불법화 역시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매우 특이한 제도다. 우리나라 건강보험 급여 제도에서 약은 포지티브 리스트를 사용하고 있다. 즉 건강보험 급여가 되는 약을 목록에서 열거하고 있다. 만약 건강보험 급여 기준에 미달하는 경우에는 환자가 비용을 부담하여 약을 복용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 건강보험 급여 제도에서 의료 행위는 네거티브 리스트를 사용하고 있다. 미용 성형과 같은 비급여 의료 행위(법적 비급여)를 열거하고 그 나머지는 모두 건강보험에서 급여를 해 준다는 의미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새로운 의료기기나 치료재가 계속 발전하고 있어 급여 기준이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경우 의료기관이 환자 동의하에 더 비싼 치료재를 사용하고 비용을 받으면 임의 비급여로 불법 의료 행위가 된다.
2016년 고려대학교 법학연구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연구 용역을 받아 작성한 보고서는 의료행위에 대한 임의 비급여 불법화의 특이성을 아래와 같이 지적하고 있다[4].
우리나라는 행위나 치료재의 경우 네거티브 리스트를 적용하고 있다. 이는 급여 기준을 벗어나는 경우 환자에게 비용을 받을 수 없으므로 의료 서비스 제공이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제외국은 포지티브 리스트를 적용하고 있어 급여 항목을 정해 놓고 나머지는 비급여가 가능하다. 물론 건강보험은 한정된 재원 내에서 운영되어야 하므로 보편적 기준으로 급여 기준이 설정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의료의 다양성을 반영할 수 있는 시스템이 보강되어 진료에 대한 환자의 선택권이 제한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처럼 요양기관강제지정제는 강제 수가, 강제 심사, 강제 삭감, 강제 환수, 의료 행위 임의 비급여 불법화라는 중층적 규제로 연결되고 있다. 더 나아가 요양기관강제지정제는 의사의 오랜 경험을 보상하지 않는 불공정한 제도의 토대가 되고 있다.
프랑스에서 의사는 섹터 1, 2 의사로 구별된다. 섹터 1 의사는 환자에게 국가 결정 수가(the national fixed fee)를 받는다. 정부는 섹터 1 의사에 대하여 연금을 지원한다. 반면 섹터 2 의사는 환자에게 국가 결정 수가 이상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섹터 2 의사에 대하여 연금을 지원하지 않는다. 2019년 현재 48%의 전문의와 6%의 일반의가 섹터 2 의사로 일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5].
이렇게 프랑스 의사는 일반의로서 의료보장제도에서 일할 수도 있고 오랜 경험을 쌓고 전문의로서 더 많은 보상을 받는 민간 의료 영역에서 일할 수도 있다. 그리고 정부는 의료보장제도에서 일하는 의사들에게 연금을 지원하여 의료보장제도를 튼튼히 하고 있다.
영국의 의사 역시 마찬가지다. 영국의 GP나 consultants는 의료보장제도인 NHS에서 일할 수도 있고 본인의 선택에 따라 민간 의료에서 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국의 NHS에서 일하는 consultants는 동시에 민간 의료에서 일할 수 있는 의사 겸업이 가능하고 영국 민간 의료의 상당 부분은 이런 consultants가 제공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요양기관강제지정제 아래에서 의사로서의 오랜 노력과 경험을 반영할 수 있는 보상 제도가 없다. 이는 마치 보건복지부의 사무관 보수나 국실장 보수를 동일하게 만들어 놓은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결 론
서구 민주주의 국가는 생명이 소중하다고 의료 서비스를 강제로 저렴하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충분한 재정을 투여하여 가난한 국민을 도와주었다. 그것이 의료보장제도다. 또한 개인의 선택권, 국가 재정의 한계를 인정하기 때문에 의료보장제도와 민간 의료가 공존하며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생명이 소중하다며 의료 서비스를 강제로 저렴하게 만들어 의료 보장을 하였다. 결국 의료기관은 박리다매, 비급여 창출 등으로 수입을 보전하였으며 이렇게 우리나라 의료 체계는 거대한 교차 보조에 의존하여 왔다. 특히 대학병원은 전공의의 과도한 노동력에 의존하면서 극도의 효율을 추구하는 형태로 운영되어 왔다. 그리고 최근 의료인에 대한 의료 민형사 책임이 가중되면서 필수의료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과거 미국에서는 의료사고 배상액이 급증하자 병원은 진료비를 올려 대응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의사와 의료기관은 보건복지부가 강제로 정한 진료비를 올려 받을 수 없다. 결국 의사와 의료기관이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위험도 높은 필수진료를 그만두는 것뿐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필수의료 파탄은 우리나라 의료 체계의 독특한 특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다른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 볼 수 없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규제, 갈라파고스 의료 체계가 필수의료 파탄의 근본적 원인이다.
우리나라는 노인 인구의 급증과 초저출생이라는 인구학적 변화, 의료기술의 급격한 발전 속에서 의료보장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도가 높아지고 있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는 의료보장제도와 민간 의료가 각자의 역할을 하게 하여 의료 정책의 다양한 목표를 조화롭게 충족하여 왔다.
2024년 보건복지부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급격한 의과대학 증원은 가두리 양식장과 같은 우리나라 의료 체계의 구조적 문제점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오로지 표피적 정책으로 의사의 이기심에 책임을 돌리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그런 일방적 정책은 미래 세대의 의료인들에게 극심한 저항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또한 그런 일방적 정책으로 우리나라 필수의료 파탄을 해결할 수도 없으며 지속 가능한 의료 체계를 만들 수도 없다.
우리나라 의료 체계는 다른 무엇보다 체계 정합성을 회복하여야 한다. 공공 의료를 위하여 다른 국민에게 요구되지 않는 규제를 가한다면 그 안에서 발전과 삶의 질을 도모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공공 의료를 발전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Notes
CONFLICTS OF INTEREST
No potential conflict of interest relevant to this article was reported.
FUNDING
None.
AUTHOR CONTRIBUTIONS
Hyoung Wook Park confirms sole responsibility for the following: manuscript preparation and editing.
Acknowledgements
None.